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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강 봉천궁 천상성모 정월 대보름 순례

타이완 전국 호야의 발상지
 신강 봉천궁 천상성모 정월 대보름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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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소: 자이현신강향신민로 53호
경 위 도: 120.34788,23.55662
입장료:
개방기간:
행사일 음력 정월 15일
개방시간: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주관 기관: 재단법인 자이현 신강 봉천궁
주관 기관 홈페이지: 
E-mail: cyhgftg@yahoo.com.tw
문의전화: (05)374-2034

경관 가치

여러 번에 걸쳐 재건된 신강 봉천궁은 건축에 참여한 장인 중 광둥계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전체 건축물에서 여러 시대의 웨파 기풍을 풍기고 있다. 그중 가장 뛰어난 삼천전은 일제시대의 웨파 목공 명장 우하이퉁(吳海桐)의 솜씨이며, 이후 전점을 수리하면서 더해진 명장 훙쿤푸(洪坤福)의 교지도 장식 모두 진귀한 유물이다. 봉천궁에서 가장 특별한 점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금 어사화를 쓴 호야를 제단 위에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이 호야는 타이완 전국 천여 곳에 널리 분령되어 있다. 매년 호야 장군의 탄생일이 되면 분령된 호야들의 알조(謁祖) 참배의식이 대성황을 이룬다. 또한, 원소절에 열리는 ‘천상성모 정월 대보름 순례’는 전통 형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신강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연례 민속 활동이다.

역사 연혁

천상성모를 모시는 봉천궁은 청나라 시대인 1700년, 주민들이 천비묘(天妃廟)를 세우고 제사를 받들면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천후궁(天后宮)으로 개칭하였다. 번강강(현 베이강강)의 잦은 범람과 물길의 변화는 사당에 여러 번 손상을 주었는데, 1799년에는 홍수로 사당이 파괴되기도 했다. 후에 수군 제독 왕득록(王得祿, 1770년~1842년)이 자금을 기부하며 사당 건축을 제의하였고 1811년에 봉천궁이 낙성되었다. 일제시대인 1905년에는 자난 대지진이 발생하여 봉천궁의 삼천전, 배정과 정전이 모두 무너지고 후전의 처마 기둥이 끊어져 다음 해에 보수를 시작하였다. 1912년에는 북부의 장인인 우하이퉁을 초빙하여 손상이 심한 각 부분을 보수하도록 하였고, 후에 다시 증축을 걸쳐 현재의 모습을 완성하였다. 현재 자이현 지정 유적으로 등록되어 있다. 매년 정월에는 원소절을 맞아 마조신이 경내의 18 동네를 행차하는 의식을 거행하는데, 행차 범위가 매우 넓어 자이현 신강향, 시커우향, 윈린현 위안창향, 베이강진을 모두 포함하며, 행차 노선을 따라 백여 개의 크고 작은 사당을 지난다. 이 정월 대보름 순례는 윈린과 자이 지역의 중요한 종교 행사 중 하나가 되었다.

특색 가이드

 신강 봉천궁 천상성모 정월 대보름 순례평면도에 【100대 명승지 명칭】각 항목이 표시되며, 안내 항목은 총 5개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삼천전의 구조

奉天宮三川殿 봉천궁의 건축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은 삼천전이다. 일제시대인 1912년, 웨파 장인 우하이퉁(1867년~1938년)의 작품으로 웨파의 장인에게서 나왔지만 풍부한 장파의 색채를 지니고 있다. 지붕은 가사수(假四垂, 지붕 위에 작은 지붕 한 층이 더 펼쳐진 형식)형식인데, 위 처마는 저울의 원리를 이용해 처마 기둥으로 평고대를 연장한 형태를 취하고 있고, 들어 올려진 아래 처마가 지붕을 평탄하게 해 시각적으로 우뚝 솟아 있는 느낌을 준다. 정면은 석조로 장식이 되어있고 앞뒤 처마는 돌기둥으로 받치고 있는데 앞 처마의 돌기둥에는 팔선과 꽈리를 튼 용이, 뒤 처마의 돌기둥에는 꽃과 새가 조각되어 있으며 가운데 문에는 수문신인 용이 그려져 있다. 삼천전은 네 개의 기둥과 세 칸(두 기둥 사이를 한 칸으로 부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7개의 들보(지붕을 지탱하는 설계), 처마 끝(지붕의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는 적주(吊柱)를 사용하여 꽃바구니 장식을 하였다. 사수정(四垂頂) 지붕은 처마 기둥에서부터 들어 올려져 있고 관도공(관운장의 칼 모양의 공으로 윗면에 틈이 있어 주로 두공의 수직 중량을 받친다)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으며, 익각이 지붕 위에서 화려함을 드리우고 있다. 삼천전 위의 전점은 1961년 재건 시에 만들어진 명장 홍쿤푸(1865년~몰년 미상)의 교지도 장식 작품이다.

2대형 왕군진향(往郡進香) 깃발

‘신강 봉천궁 왕군진향 깃발’은 높이 350cm, 넓이 113cm, 모 재질의 붉은색 수직 깃발로, 앞면에는 팔선 문양과 번난강, 왕군진향이라는 금색 글씨가 수놓아져 있고, 뒷면에는 용봉도와 봉천궁 천상성모라는 글자가 있다. ‘번난강 봉천궁의 천상성모를 자이청 다마오시보 신강가의 린둥이(林東義)가 경건하게 받들어 모심을 표시함’이라는 문구로 볼 때 제작 시기가 약 1901년에서 1917년 사이임을 추측할 수 있다. 봉천궁은 일제시대에 타이난까지도 영향을 미쳤던 역사가 있어 이 대형 깃발도 당시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독특한 디자인과 정교한 자수가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깃발의 문양을 만들어낸다.

3일본 천황의 수패 기조(壽牌基組)

日本天皇壽牌基組 1928년, 일본 쇼와 천황에게 권한을 부여받은 임제종 대본산 묘심사는 타이완 백성들의 황민사상을 강화하고 일본 천황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참배하며 머리를 조아릴 수 있도록 타이완 중요 사찰 20곳에 ‘금상 천황 하사 수패’를 내렸다. 2차 세계대전(1945년) 후 각지의 일본 천황 수패는 모두 파괴되었고 현재는 신강 봉천궁의 수패만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수패에는 ‘금상 천황폐하 성수만세(今上天皇陛下聖壽萬歲)’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특히 목갑 가운데 부분에는 국화가 워터마크처럼 그려져 있으며, 목갑의 바깥 부분에는 ‘고산노키리몬(五三桐紋, 오삼동문)’ 장식이 새겨져 있다. 이는 원래 일본 전국 시대(1467년~1616년) 귀족가문의 휘장이었으나 후에 ‘정권 책임자(수상)’및 국선 신사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수패의 목갑은 백 년 전 일본 칠기 공예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4금 어사화를 쓴 호야

御賜金花虎爺 신강 봉천궁의 호야는 백년 전 마위안랴오(신강의 옛 명칭) 때 조경당(肇慶堂)의 토지신 사당에 모셔졌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왕이 꿈속에서 소란을 피우는 귀신을 만났는데 호야 장군이 왕을 구하며 공적을 세웠고 이에 황제가 ‘장원 호랑이’로 책봉했다고 한다. 호야는 일반 전통상으로 신의 제단 아래에 모셔지지만 봉천궁의 호야는 공적을 세운 호랑이기에 금으로 된 어사화를 쓰고 제단 위에 모셔져 있다. 타이완에서 유일하게 금 어사화를 쓰고 제단 위에 있는 호야이며, 독립적인 ‘호야전(虎爺殿)’이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이완 전국 천여 곳은 물론 터키에까지 분령되어 있다. 매년 음력 6월 6일 호야 장군 탄생일에는 정전에서 신도들의 숭배를 받는다. 분령된 호야들 또한 봉천궁으로 돌아와 알조 참배를 드린다.

5정월 대보름 순례(18 마을의 마조 행차 맞이)

信眾參加元宵遶境(十八庄迎媽祖) 봉천궁은 청나라 가경시기(1796년〜1820년)에 사당을 재건한 18개 마을의 주민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18개 마을 마조 행차 의식을 열기 시작했다. 3년에 한 번 길에 맞닿아 있는 4개 마을을 행차하고 4년에 한 번 이사와 감사를 선출한 다음 해에는 18개 마을과 우(吳) 지역의 11개 마을로 확대하여 행차한다. 원래는 차량을 이용한 행렬이었지만 2008년부터 도보 행차로 바뀌었으며, 범위 또한 자이시와 자이현의 산, 바다와 평원으로 넓어져 ‘산과 바다 유람 참배’ 의식으로 확대되어 현재의 봉천궁 정월 대보름 순례 규모를 확정 지었다. 전체 일정은 7박 8일에 달한다. 행차 여정은 대체로 부적 붙이기, 폭죽을 터트리는 호포, 축문 낭독, 전통극, 마조 행차, 사당 입장 및 안치 등으로 이어지며, 진두 행렬 또한 대진두, 북관, 남관, 나팔 불기, 곤곡, 사자춤 등으로 다양하여 신강 지역의 연중 중요한 민속 활동이다.

주의 사항

행차 참관 시에는 폭죽으로 인한 부상과 오염된 공기를 막을 수 있도록 신체를 보호할 옷과 마스크를 준비해야 한다. 매년 행차 기간을 막론하고 모두 음력 정월 15일을 마지막 날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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