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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마이랴오 공범궁

타이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명장들의 대장작(對場作) 사당
마이랴오 공범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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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소: 윈린현마이랴오향마이펑촌 중정로 3호
경 위 도: 120.25520,23.74825
입장료:
개방기간:
연중
개방시간: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관 기관: 마이랴오 공범궁(麥寮拱範宮)
주관 기관 홈페이지: 
E-mail: kongfantemple@gmail.com
문의전화: (05)693-2033

경관 가치

일제 시대에 마이랴오 지역과 인근 6개 마을의 신도들이 힘을 모아 재건을 완료한 마이랴오 공범궁(麥寮拱範宮)은 윈린 해안 지방 주민들의 신앙 중심지이며, 일제 시대였던 1930년대 타이완의 정교한 건축 예술 수준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기도 하다. 정전과 배전을 한 조, 삼천전과 후전을 다른 한 조로 한 목공 ‘대장작(對場作, 장인들이 각각 건물의 다른 부분을 맡아 경쟁하듯 건축한 작품)’ 제작 과정에는 중국 탕산 취안저우 시디파의 왕수파(王樹發)와 타이완의 장저우파 장인 천잉빈(陳應彬)의 제자인 린훠옌(林火寅)이 참여하였다. 또한 황구이리(黃龜理)의 목조, 장주(蔣九)의 석조, 천톈치(陳天乞)와 야오쯔라이(姚自來)의 교지도, 판춘위안(潘春源)의 채색화 등 유명 장인들의 작품 원본이 그대로 보존되어 일제시대 전통 사당 예술의 정수를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으며,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대장작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역사 연혁

개산마조를 모시고 있는 마이랴오 공범궁(麥寮拱範宮)은 베이강 조천궁, 타이시 안서부, 바오중 마밍산 진안궁과 함께 윈린현의 4대묘로 일컬어지고 있다. 공범궁은 1685년, 메이저우의 순진선사가 메이저우묘(원래 명칭은 조천각이었으나 강희 22년인 1683년에 정전을 짓고 개칭함)의 정육마(正六媽) 신상을 모시고 하이펑항(현재의 류칭항구 인근)에 상륙하여 타이완에 온 후, 하이펑 항만가의 사당에 안치한 데서 기원하였다. 1742에는 수재가 발생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주하였으며 후에 청나라 가경, 도광, 동치 시대와 일제시대를 거치며 여러 차례 재건을 겪었다. 1930년에는 침수와 충해 피해를 겪게 되었는데, 마이랴오의 문인인 린파오(林炮, 생몰년 미상)등의 제안으로 마이랴오향 전지역과 일부 위안창향, 타이시향, 둥스향, 바오중향, 룬베이향, 투쿠이진 등지의 신도들이 모두 함께 사당을 재건하였다. 사당 재건에는 8년의 시간이 걸렸다. 당시 정전과 배전은 취안저우 시디파 장인 왕수파(王樹發, 생몰년 미상)와 천잉빈(陳應彬, 1864년~1944년)의 수제자인 천좐린(陳專琳, 생몰년 미상), 랴오스청(廖石成, 1899년~1984년), 천쉬안칭(陳選卿, 생몰년 미상), 황텅(黃騰, 생몰년 미상) 등의 대 장인들이 맡았으며, 린훠옌(林火寅, 생몰년 미상)이 삼천전과 후전을 맡아 타이완에서 굉장히 진귀한 ‘전후 대창작(前後對場作)’이 탄생하였다. 또한 목조 작품에는 황구이리(黃龜理, 1903년~1995년), 석조 작품에는 장주(蔣九), 교지도에는 천톈치(陳天乞, 1906년~1990년)와 야오쯔라이(姚自來, 1911년~2007년), 채색화에는 판춘위안(潘春源, 1891년~1972년)이 참여하는 등 당시의 일대 명장들의 작품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다. 1967년에는 신강 자의의 장인을 초청해 지붕의 전점(剪黏) 조소를 대장작으로 다시 시공하였으며, 1980년대에 삼천전의 지붕을 수리하면서 겹처마 ‘가사수(假四垂)’ 형식의 외양을 더했다. 마이랴오 공범궁(麥寮拱範宮)은 2012년에 국가 지정 유적으로 선정되었다.

특색 가이드

마이랴오 공범궁평면도에 【100대 명승지 명칭】각 항목이 표시되며, 안내 항목은 총 6개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개산육마(開山六媽)

정전 감실 중간 ‘진전마(鎮殿媽)’ 앞에 있는 개산육마는 공범궁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신상으로, 1685년에 메이저우의 순진선사가 메이저우묘에서 타이완으로 모시고 온 것이다. 1881년에는 공범궁에서 참배단을 조직해 메이저우 조묘로 알조(謁祖) 참배를 드리러 갔다. 메이저우 조묘의 감실 내에는 석조로 된 긴 상이 있는데 상에 나 있는 6개의 홈에는 각각 노대마(老大媽), 노이마(老二媽), 노삼마(老三媽), 사마(四媽), 오마(五媽)의 신상이 놓여 있으며 육마(六媽)만이 빠져 있다. 알조 참배를 드리러 갔을 당시 공범궁의 ‘개산육마’ 신상을 이 홈에 안치했더니 자리에 완전히 들어맞았고, 이 ‘마이랴오마(麥寮媽)’의 기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는 미담이 전해지고 있다. 신상의 높이는 1척(약 33cm)이며, 의관의 무늬에는 옻 실이 사용되었고 발에는 화려한 전족 신발이 조각되어 있다. 신상의 얼굴은 향 연기에 그을렸지만 자비롭고 인자한 모습과 장엄하면서 중후한 자태는 그대로이다.

2정전의 팔괘 조정

正殿八卦藻井 공범궁 정전 위의 팔괘 조정은 중국 탕산 시디파(溪底派) 장인인 왕수파(생몰년 미상)의 작품이다. 시디파 조정의 특징은 ‘정심명경(頂心明鏡, 윗부분의 천장)’을 중심으로 두공을 층층히 쌓은 후 가운데를 천장으로 덮은 데에 있다. 하지만 공범궁 정전의 조정은 중간의 골조가 그대로 노출된 설계로 표현되어 있어 타이완에서 유일하게 기존의 시디파 형식을 벗어난 작품이다. 조정의 폭은 4.6m이며 하부에는 희로애락의 네 가지 표정을 가진 비룡과 자라가 장식된 살미가 사점금주와 툇마루 사이의 공간에 설계되어 있다. 또한 수재(豎材)에는 장정과 동자 모습의 비천 역사가 정밀한 기법으로 조각되어 있다.

3교지도

拱範宮的交趾陶 공범궁의 채색 교지도는 삼천전, 배전, 정전 양측에 각각 위치해 있다. 작품의 주제는 모두 삼국연의와 민간 고사에서 따 왔으며, 당대의 교지도 명장인 천톈치(1906년~1990년)와 야오쯔라이(1911년~2007년)의 작품이다. 작품 모두 놀라울 만한 예술적 수준과 창조적 표현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중 정전 오른쪽의 ‘화영도착방조(華榮道捉放曹)’는 청룡언월도를 들고 있는 관운장과 붉은색 옷을 입고 있는 조조를 매우 우아한 모습으로 조각해 냄으로써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4임신년 여의 망목 두공

삼천전의 ‘임신년 여의 망목 두공’은 일제 시대에 재건을 거칠 당시 장파 장인이 만든 것으로 타이완에서 매우 희귀한 문자 형식의 두공이다. 사당을 재건했던 임신년 글자가 망목 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매우 고상한 모습을 보여준다.

5삼천전의 용 기둥과 감번강묘각(憨番扛廟角)

三川殿龍柱憨番扛廟角

일제시대 재건 당시 공범궁에 만들어진 석조 작품들은 ‘아주스(阿九師)’라고도 불렸던 장주의 작품이다. 그 중 삼천전의 용 기둥과 감번강묘각(憨番扛廟角)은 가장 특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기둥마다 용 한 마리가 조각되어 있으며 왼쪽과 오른쪽 기둥의 용 모두 입을 벌리고 있는 형태이다. 용의 몸통은 유연하면서도 힘이 있고 이를 드러내면서 발톱을 세운 모습을 가지고 있어 타이완의 후기 전통 사당 건축의 용 기둥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공범궁의 감번강묘각은 노동자 모습의 외국인을 조각해 놓은 다른 사당과는 다르게 짙은 눈썹과 큰 눈, 긴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말쑥한 양복을 입은 점잖은 모습을 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6진전마(鎮殿媽), 천리안(千里眼), 순풍이(順風耳) 장군

鎮殿媽聖像 정전 감실에 있는 6척(약 2m) 크기의 진전마는 일제시대에 신상이 파손되어 복구할 수 없게 되자 명장인 황구이리와 린관창(林冠昌, 생몰년 미상)을 초청하여 새로 조각한 것이다. 전전 앞에 있는 천리안과 순풍이 장군 신상 또한 목조 명장인 황구이리의 작품으로, 녹나무 한 그루를 세공하여 만든 것이다. 한 사람의 눈은 천리를 내다보며 한 사람의 귀는 팔방의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자태 또한 위협적이지만 흉악스럽지 않고 생동감을 주고 있는 것은 물론 완벽한 비율을 자랑하고 있다. 당시 황구이리와 장파 장인들은 삼천전에 하늘을 나는 백로와 봉황 모양의 삽각(插角)과 봉신연의의 이야기를 담은 원광(員光)을 남겨두었는데 모두 아름답고 절묘하게 장식되어 있다.

주의 사항

마이랴오 공범궁(麥寮拱範宮)은 타이완 전국에 분령되어 있다. 음력 3월 23일 천상성모 탄신일 전야에는 각 분령 사당에서 이곳 공범궁으로 와 탄신 축하 참배를 하여 일 년 중 가장 성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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