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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펑후 천후궁

타이완의 최초의 마조 사당
펑후 천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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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소: 펑후현마공시중양리 정이가 1호
경 위 도: 119.56404,23.56469
입장료:
개방기간:
연중
개방시간:
오전 5시부터 오후 8시까지
주관 기관: 펑후 천후궁(澎湖天后宮)
주관 기관 홈페이지: 
E-mail: 
문의전화: 06-9262819

경관 가치

펑후 천후궁(澎湖天后宮)은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현지 신앙의 중심지 자리를 지켜왔다. 사당에 있는 ‘심유용유퇴홍모번위마랑(沈有容諭退紅毛番韋麻郎)’ 비석은 ‘타이완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펑후 천후궁(澎湖天后宮)이 타이완 전국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를 가진 마조 사당이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강희황제에게 ‘천후(天后)’로 봉해진 ‘금면(金面)’ 마조와 ‘마궁(媽宮)’이라고 불린 현재 마궁(馬公)시의 옛 지명 또한 펑후 천후궁(澎湖天后宮)의 숭고한 역사적 지위를 반영하고 있다. 예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펑후 천후궁(澎湖天后宮)은 건축물 자체는 물론 높은 예술 수준을 보여주는 뇌금화, 석조, 목조, 착화(鑿花), 채색화 모두 장인의 손을 거친 것으로 타이완 민간 예술의 높은 성취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역사 연혁

중국 역사서에서는 한족들이 남송(1127년~1279년) 시대부터 펑후로 이민을 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펑후 천후궁(澎湖天后宮)은 한족 사람들이 타이완 지역에 와 개간을 시작하면서 건설한 첫 번째 사당으로, 그 역사는 원나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사료는 1604년에 도사(都司) 심유용(沈有容)이 천후궁에서 네덜란드의 장군 비르란트 반 바르비크(Wijbrand van Waerwijck, 생몰년 미상)를 물리쳤다는 기록으로, 이를 증명하는 비석이 아직 증거로 청풍각에 남아있다. 1623년에 네덜란드 사람이 그린 펑후 지도에서도 ‘중국 사당(Sineesche Tempel)’이라는 표시를 볼 수 있는데 앞뒤로 두 건물이 연결된 지도의 그림은 초기 펑후 천후궁(澎湖天后宮)의 규모와 같다. 펑후 천후궁(澎湖天后宮)의 옛 명칭은 천비궁(天妃宮), 마랑궁(媽娘宮), 랑마궁(娘媽宮), 마궁(媽宮) 등으로 사당의 이름이 곧 당시 평후의 지명이기도 했다. 1683년, 푸젠의 수사제독(水師提督) 이었던 시랑(施琅)이 군대를 이끌고 펑후로 내려왔는데, 모두 마조의 비호를 받아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하여 황제에게 마조를 천후로 봉할 것을 주청드렸다. 따라서 사당의 이름이 현재의 ‘천후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일제시대였던 1922년에 마궁 타이완•샤먼 상업 조합의 회원들이 차오저우계 목공장인 란무(藍木)를 초빙하여 사당을 재건할 것을 제의했으며, 사당 옆의 점포를 매입하여 부지를 확장하고 사당 앞 공간과 후전을 증축하며 현재와 같은 우뚝 솟은 사당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83년, 펑후 천추궁은 국가 지정 유적지로 등록됨과 동시에 수리 공사를 진행하였다. 2011년에는 일 년 내내 이어진 비바람으로 인해 사당의 주 건물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며 청풍각은 붕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따라서 다시 수리를 시작하였고 2014년에 완료되었다.

특색 가이드

펑후 천후궁평면도에 【100대 명승지 명칭】각 항목이 표시되며, 안내 항목은 총 8개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삼전이원(三殿二院)식 구조와 차오저우풍의 건축 특색

潮州風格建築特色木雕以樟木表現 현재 펑후 천후궁(澎湖天后宮)의 구조는 일제시대인 1922년에 재건을 거치며 완성된 것이다. 당시 재건 공정은 광둥 차오저우계 장인인 란무(1872년~몰년 미상)가 맡았기 때문에 민난식 양식이 주를 이루던 당시 타이완의 다른 사당 건물과는 차이가 있다. 전체적인 구조는 삼전이원식으로 삼천전, 정전 및 후전의 청풍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사이마다 뜰이 있으며 후용과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당은 경사면에 건설되어 있기 때문에 사당 안으로 들어갈수록 지형이 높아지며, 건물의 바깥 담에는 펑후 특유의 노석(硓石)을 사용한 것이 큰 특징이다. 사당 마당과 삼천전 사이에 있는 돌계단은 다각형으로 설계되어 있다. 일반적인 타이완 사당은 원형 혹은 사각형으로 돌계단을 설계하며 이렇게 다각형의 돌계단은 유일하게 펑후 천후궁(澎湖天后宮)에서만 볼 수 있는 설계이다. 삼천전은 삼개간 크기이며 양옆에는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후용이 연결되어 있다. 이는 펑후 현지의 특수한 건축 양식이며 차화(刺花), 채색화 등의 장식 예술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녹나무를 많이 사용한 사당의 아름다운 목조들은 근대 타이완 사당 조각의 정교함과 사실적인 공법을 사용하여 화려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목조 예술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패루의 골조 윗부분에 있는 앞으로 기울어져 있는 만방(彎枋, 패루 표면에 있는 구부러진 방목), 작은 조통 기둥과 큰 조각 장식, ‘사각형’의 기둥, 패루 위의 만방과 연공을 기둥에 밀착시켜 고정하기 위해 설계된 두(斗)는 모두 차오저우파 펑후 장인의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2타이완에서 가장 오래된 ‘심유용유퇴홍모번위마랑(沈有容諭退紅毛番韋麻郎)’비석

「沈有容諭退紅毛番韋麻郎」花崗石碑 청풍각에 소장되어 있는 높이 194cm, 너비 29cm의 ‘심유용유퇴홍모번위마랑(沈有容諭退紅毛番韋麻郎)’ 화강암 비석은 타이완 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비석으로 ‘타이완의 첫 번째’ 비석이라고 불린다. 비석에 따르면 1604년, 연합 동인도 회사가 보낸 비르란트 반 바르비크 제독은 함선을 이끌고 중국에 무역을 요구하려 했으나, 광저우에서 폭풍을 만나면서 목적지를 펑후로 바꾸었다. 명나라의 푸젠 총병(總兵) 시덕정(施德政)은 도사(都司) 심유용(沈有容, 1557년~1627년)을 펑후로 파견하여 교섭하게 했으며 네덜란드인을 퇴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비석을 세워 이 외교적 승리를 기념했다.

3삼천전 보구 가동(架棟)의 차화(착화)

三川殿步口架棟的刺花(鑿花) 삼천전 보구(步口, 건물 앞면에 지붕 처마를 연장하여 만든 복도 공간) 위편 기둥에 장식된 조각 장식은 링난화(嶺南畫)파의 영향을 받은 목공 장인의 솜씨로, 내지외엽(內枝外葉) 기법을 사용하여 울퉁불퉁한 여러 층에 극도로 세밀한 공법을 표현하였다. 소재는 역사적 이야기, 꽃과 새 등이며 천후궁의 장식 예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타이완 전국 사당 중 가장 우수한 작품 중 하나이다.

4정전의 뇌금화(擂金畫)

천후궁의 채색화 작품 ‘뇌금화’는 정전 감실의 좌우 양쪽에 장식되어 있다. 상인방에 3폭, 감실에 4폭이 있으며 모두 ‘수림사(水林師)’라고 불리는 푸젠 장저우 출신의 목공장인 주시간(朱錫甘, 1895년~1940년)의 작품이다. 뇌금화는 사당 채색화 기술 중에서도 특수한 것으로 금박분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흑칠 바탕이 아직 마르지 않았을 때 금가루의 밀도를 조절해 농담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지만 화려하고 고귀한 시각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뇌금화는 타이완 본섬에서 쉽게 볼 수 없으며, 펑후에서도 천후궁에서만 여러 폭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그림의 주 소재는 인물이며, 천후궁 채색화 장식의 중요 작품 중 하나이다. 뇌금화 작품은 복원을 거친 후에 유리관을 씌워 보호하고 있다.

5금면 마조 신상

정전 감실의 금면 마조는 관을 쓴 채 온화하며 상냥한 표정을 짓고 있다. 1683년 푸젠의 수사제독인 시랑(1621년~1696년)이 정씨 왕국의 수비군을 격파하고 펑후를 점령했을 때 마조의 도움으로 자신이 승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여, 황제에게 주청을 드려 1684년에 마조를 ‘천후’로 봉하고 ‘금면’을 하사했으며 사당의 이름도 ‘천후궁’으로 바꾸었다.

6꽃과 새 장식이 있는 정전의 가운데 문

正殿花鳥屏門 정전 앞에 있는 병담(屏堵)에는 총 8짝의 문이 있다. 일제시대인 1923년에 있었던 천후궁 재건 공정에는 정전에 가운데 문이 없었지만 타이완 광복(1945년) 후, 태풍의 빗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하였다. 가운데 문은 각각 꽃과 새, 사계절의 길조 등을 주제로 하여 부귀와 행복이 함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매우 정교한 기법을 사용한 최고의 목조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7‘공비사문(功庇斯文)’ 현판

정전의 오른쪽 통로 위편에는 ‘공비사문’ 현판이 있다. 펑후에서 가장 처음으로 과거 시험에 합격한 ‘개팽진사(開澎進士)’ 채정란(蔡廷蘭)이 1844년 진사에 합격하고 조상에게 제를 올리기 위해 고향을 방문했는데, 마침 1845년에 천후궁의 재건도 완료되자 학생들에 대한 마조의 가호에 감사드리기 위해 현판을 기증했다.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금색 글자가 음각되어 있어 매우 특별하다. 1923년, 재건이 완료된 청풍각 2층에 걸렸으며 현재는 정전의 오른쪽 통로 위편의 둘째 줄 동쪽으로 옮겨졌다.

8청풍각 박물관

清風閣文物館 공선루(公善樓)라고도 불리는 후전의 청풍각은 당시 문인들의 모임 장소였다. 일제시대였던 1925년, 천후궁의 재건을 거치며 증축된 건물로,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높은 건물이라는 뜻의 ‘청풍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건물의 많은 목조 디테일들은 모두 차오저우식 건물의 특징이다. 청풍각 내부에는 주로 펑후 천후궁(澎湖天后宮)의 역사 유물과 옛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중에는 ‘심유용유퇴홍모번위마랑’등의 석비, 네덜란드 사람이 그린 ‘펑후 항구 지도’, 천후궁 재건비 탁본, ‘공비사문’ 현판의 탁본, 옛날 천후궁의 수리 기록 및 도해, 천후궁 재건시에 해체된 옛 부재 등이 있다.

주의 사항

펑후 천후궁(澎湖天后宮)은 음력 정월 15일 원소절에 펑후 고유 민속 활동인 ‘걸귀(乞龜)’ 행사를 연다. 행사 당일 사당에서는 방편귀(肪片龜, 찹쌀가루에 설탕을 넣어 바다 거북 모양으로 만든 것)를 준비하며, 반달 모양의 나뭇조각인 교를 던져 참배자가 방편귀를 가지고 집에서 제를 올려 평안을 빌어도 되는지 신의 뜻을 묻는다. 이듬해에는 감사의 참배를 드린다. 방편귀의 등에는 정교한 그림을 그려 다채로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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