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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 죽련사

타이완에서 매우 진귀한 쌍룡이 수호하고 있는 어사 금 현판을 보존하고 있는 사찰
신주 죽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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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소: 신주시동구주롄가 100호
경 위 도: 120.97002,24.79889
입장료:
개방기간: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개방시간: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관 기관: 죽련사
주관 기관 홈페이지: 링크
E-mail: 
문의전화: (03)524-4299

경관 가치

죽련사는 신주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사찰로써 도성황묘, 외천후궁과 함께 신주 3대 사당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사찰은 신주 지역 주민들의 신앙과 토지 개간 개발에 관한 역사 기록을 보존하고 있다. 사찰 내에는 청나라 시대 유물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데, 특히 정전의 전신이 금색으로 되어있는 관음 여신 조소상 3기와 좌우 양옆양옆 호용에 있는 십팔나한 등의 신상들은 살아있는 것과 같은 생동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양쪽에 쌍룡이 장식된 ‘대해자운’ 현판은 황제에게서 하사받은 황금 현판으로 매우 귀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타이완 전국에서 매우 희소한 유물이다. 정전의 용호도용호도 교지도 작품은 1951년 사찰을 수리할 때 교지도 장인인 주자오펑이 구워서 제작한 것인데, 현장에 직접 시설을 설치해 정교하고 세밀하면서도 능수능란한 작품 구도를 구현해 내었다. 이는 당시에 매우 보기 힘들었던 대형 작품이다. 또한 사찰 내의 각종 채색화, 젠녠, 소조 작품 모두 죽련사 건축 예술의 지위를 높여주고 있다.

역사 연혁

신주 죽련사(新竹竹蓮寺)는 ‘신주 관음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강희 시대(1662년~1722년)에 한 농민이 관음대사 신상을 발견하고 신주 남문 밖에 작은 암자를 지어 모셨는데, 신도들이 와서 복과 평안을 기원했더니 매우 영험했다고 한다. 1781년에는 신도들이 현재 위치의 토지를 헌납하자 이곳에 사찰을 짓고 죽련사라 이름 붙였다. 1825년에는 재건을 거쳤으며 이후에는 자선가인 린샹윈(생몰년 미상)이 이어서 수리를 맡았다. 1866년부터 18731873년 사이에는 다시 확장 공사를 진행했다. 1888년에는 신주에 큰 가뭄이가뭄이 들어 작황이 좋지 않았는데, 현지의 관료와 백성들이 비를 기원한 후 효험을 보았고, 황제에게서 ‘대해자운’이라는대해자운’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아 정전 높은 곳에 걸어 두었다. 일제시기인 1937년에 일본 정부가 타이완에서 황민화 운동을 실시하자 일본인들이 사찰과사찰과 신상을 훼손하였고, 신주시에는 성황묘와 장화궁, 죽련사만이 남게 되었다. 1958년에는 다시 자금을 모아 오문을 증축했으며, 종루와 고루 및 육각형의 금정을 설치해 사찰을 더욱 화려하게 꾸몄다.

특색 가이드

신주 죽련사평면도에 【100대 명승지 명칭】각 항목이 표시되며, 안내 항목은 총 6개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대해자운’ 현판

竹蓮寺正殿上方的「大海慈雲」匾額 죽련사 정전 위에는 ‘대해자운’ 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있다. 1888년, 신주에 큰큰 가뭄이 들었을 때 지현(현의 일급 행정 수장)인 방쭈인(생몰년 미상)이 성황야와 용신 및 관세음보살에게 비를 기원하였는데, 당시 관음 여신이여신이 비를 내릴 수 있도록 처음으로 신상을 죽련사에서 가지고 나와 행차를 하였고, 이 행렬이 난랴오 항구에 도착하기도도착하기도 전에 비바람이 몰아치며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따라서 타이완 순무인 류밍촨(1836년~1896년)에게 황제에 현판을 주청드릴 것을 청했다고 한다. ‘대해자운’ 현판은 당시 신주가신주가 겪은 큰 가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현판은 금종이에 검은 글자로 쌍룡이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형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현판 양옆에는 황금용 한 쌍이 있다. 정면 가운데에는 ‘광서 어필 보물’이라는 어인이 찍혀 있다.

2정전의 관음 여신상

竹蓮寺正殿神龕中的3尊觀音媽神像 죽련사 정전 감실에는 모두 3기의 관음 여신상이 있는데 모두 조소로 만들어진 금색 몸을 가지고 있으며 오불관을 쓰고 있다. 신도들은 대마(大媽), 이마(二媽), 삼마(三媽)라는 애칭으로 부리기도 한다. 가장 뒤에 위치한 신상이 대마인데 죽련사죽련사 사찰에 가장 먼저 모셔진 신상이다. 이마는 난하이 푸퉈산 법우사에서 모셔온 것으로 청나라 시대인 1888년, 신주에 큰큰 가뭄이 들어 비를 기원했을 때 행차를 했던 신상이다. 가장 앞에 있는 크기가 가장 작은 신상은, 가장 오래된 삼마 신상으로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3건달바 목조 조각

乾闥婆木雕 죽련사 정전 위의 대들보 양옆에는 각각 두 손을 합장하고 날개를 펼치고 있는 신상이 있는데 이는 유명한 불교의 ‘건달바’이다. 경전인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 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에게는 중생들의 필요에 따라 현신하여 설법하기 위한 32개의 화신이 있으며, 건달바도 그중 하나다. 이러한 설계는 타이완 전국 사찰 중 죽련사에서만 볼 수 있다.

4정전 양옆의 호용 십팔나한

正殿左右護龍十八羅漢神像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정전 양측의 호용 십팔나한 신상은 1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작자는 알 수 없으나 조각 형태가 매우 예스럽고 소박하여 도둑을 맞은 적도 있다. 하지만 정전의 관음 여신에게 물어보니 십팔나한은 외출했다가 돌아오기로 약속한 것으로, 3년 이내에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3년 후 세관 직원이 수색 중 발견하여 죽련사로 돌아오게 되었다.

5용호도 교지도

龍堵交趾陶虎堵交趾陶 죽련사는 1951년에 전체적인 재건을 거쳤는데 현지 사람들이 설계와 감독을 맡았으며, 현지인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사찰 내의 흙 조소 젠녠과 교지도의 대부분은 장인인 쑤양수이(1894년~1961년)가 타이완에 있던 시기에 가르쳤던 유일한 제자이자 신푸 출신인 ‘아펑쓰’ 주자오펑(1911년~1992년)이 만든 것이며 천톈치(1906년~1990년)의 작품들도 있다. 특히 용호도 교지도는 구워서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정전 뒤편에 가마를 만들어 직접 구워낸 후 현장에서 설치한 것이다. 상당히 정밀하고 세밀한 공법과 숙련된 구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당시로서는 매우 진귀한 대형 작품이기도 하다. 차간에 있는 흙으로 조소한 ‘위타’와 ‘가람’ 신상 또한 주자오펑의 작품으로 죽련사의 진귀한 보물이다.

6경태람 자기 대향로

景泰藍大香爐 일반 사찰에서 사용하는 구리나 석재로 만든 대향로를 사용하지만 죽련사에서는 경태람(중국의 대표적인 법랑 공예) 자기로 만들어진 대향로를 사용하고 있어 매우 특별하다.

주의 사항

매년 음력 정월 15일 원소절 등불 축제, 2월 19일 관세음보살 탄신 기념일, 4월 8일 욕불절, 6월 19일 관세음보살 득도 기념일, 9월 19일 관세음보살 출가수행 기념일은 죽련사의 5대 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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