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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시 롄줘산 관음사

타이완 전국에서 희소한 오문단전식 사찰
따시 롄줘산 관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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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소: 타오위안시따시구루이안로 2단 48항 28호
경 위 도: 121.28082,24.87211
입장료:
개방기간:
유적 가이드는 연중 어느 때나 가능. 관음 절기는 음력 정월 초하루~2월 19일, 6월 19일, 9월 19일
개방시간:
하절기 오전 6시~오후 7시, 동절기 오전 6시~오후 6시
주관 기관: 연좌산 관음사
주관 기관 홈페이지: 
E-mail: lianzuo@tycgtemple.org.tw
문의전화: (03)388-5674

경관 가치

연좌산 관음사는 타이완에서 매우 희귀한 단진(1자형) 구도와 함께 정전 앞에 배정을 배치한 형식을 취한 사찰이다. 사찰은 여러 번의 재건을 거쳤지만 사찰 전체를 해체한 후 다시 조립하는 방법의 재건 공법으로 청나라 시대의 목조 및 석조 부재들이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는 매우 귀한 사찰이다. 관음불을 모신 관음사에서는 광둥계 이민자들이 많이 믿는 삼관대제도 함께 모시고 있기 때문에 신도 중에는 의따시의 민난 사람과 타오위안, 신주, 먀오리의 하카족 사람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사찰은 처음에 푸젠성과 광둥성 사람들이 힘을 모아 건설한 것이라고 한다. 청나라 시대에 이 두 집단 사이에는 불화와 싸움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타이완의 개척사에서 나타나는 이민족들 간의 경합 관계가 연좌산 관음사의 신앙 체계에 잘 반영되어 있다.

역사 연혁

의따시의 칸진대교 옆에 위치해 있는 따시 연좌산(蓮座山)은 산 형세가 마치 물 위로 피어 올라온 연꽃 같이 생겼다고 하여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그 독특한 풍경으로 인해 청나라 시대인 1797년, 지역 유력인사들이 산꼭대기에 사찰을 건립하여 관세음보살을 모시도록 했다. 청나라 도광(1821~1850), 함풍(1851~1861), 광서(1875~1908) 시기에 지역 인사들이 따시 자금을 모아 재건하면서 사찰의 장엄함과 엄숙함이 더욱 증가되었다. 마지막 재건은 1998년에 진행되었으며, 초기 사찰의 원래 모습을 잘 회복하여 타오위안시 지정 유적으로 선정되었다. 200여 년 동안 연좌산 관음사는 타오위안, 신주, 먀오리 지역 하카 부족 사람들의 신앙 중심지 중 하나였으며, 관음불을 맞이하는 ‘향기(香旗, 신과 신의 군사 및 장군이 가진 법력을 대표하는 깃발)’를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 모시는 풍속이 있었다. 매년 음력 2월 19일 관세음보살 탄신일에는 향을 올리고 조상을 뵈러 오는 참배객들이 대성황을 이룬다. 사찰 앞의 광장에서는 우아한 다한 강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으며, ‘연좌산 사찰의 새벽 종소리’가 울리는 풍경은 다시따시 8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

특색 가이드

따시 롄줘산 관음사평면도에 【100대 명승지 명칭】각 항목이 표시되며, 안내 항목은 총 5개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1자형 사찰 건축

참배객으로 붐비는 연좌산 관음사는 ‘1자’ 건축 구도로 설계되었다. 연좌산의 좁은 구릉 지형으로 인해 충분한 건물 길이를 확보할 수 없어 이러한 1자형으로 발전한 것이다. 일제시기인 1934년에 사찰을 재건할 당시 오문단전식으로 개조하였으나 문이 하나인 일진(進一進) 구도는 계속 유지하였으며 사찰 안의 부재들을 외부로 옮기고 정전의 지붕도 ‘삼천(三川)’ 형식으로 변경하여 단순하고 소박하던 소형 사찰에서 9칸을 가진 ‘오문(五門)’식 중형 사찰로 변신하였다.

2배정

仙人吊筒蓮座山觀音寺一條龍的建築1자형 구도의 연좌산 관음사 건축은 앞쪽에 위치한 배정과 함께 타이완에서 희귀한 ‘일진식묘우삼천전전축헌(一進式廟宇三川殿前築軒)’의 모습과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겹처마 헐산식(歇山式) 구조(팔작지붕 위에 다시 한 층의 지붕을 얹은 건축 방식으로 존귀함을 상징한다)를 가지고 있는 배정은 일반 민중들에게 ‘관음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일제시기인 1904년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1934년에 재건될 당시, 원래 있던 사각 배정에서 8 기둥 겹처마 헐산식 지붕을 가진 배정으로 바꾸었다. 배정 앞단 양측에는 각각 우아하게 채색된 돌사자가 높은 장식성을 뽐내고 있으며, 예스러움을 가득 풍기는 신선 조통 또한 일제 쇼와시대에 재건할 당시 만들어진 작품이다.
 

3‘투팔조정’ 구조

拜亭上方的鬥八藻井 사찰 앞 배정의 윗부분에는 매우 희소성을 가진 ‘투팔조정’이 있다. 이 작법은 사각형으로 배열된 대들보 위에 목재를 팔각형으로 쌓아 만든 것인데 먼저 24개의 두공을 안쪽의 중심을 향하도록 층층이 쌓는다. 이렇게 3단을 쌓은 후에는 두공을 16개로 줄여 다시 3단을 쌓아 중심에서 만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천장 중심에 팔괘 부호를 두어 마무리한다. 대들보 위에 균등하게 배치된 두공이 위로 솟아 있는 지붕을 받쳐주고 있다. 특히 8개의 각을 가지고 있는 아랫부분의 두 번째 단에는 용을 닮은 전설의 동물인 이호(螭虎)가 뒤돌아보고 있는 모습의 두공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청나라 광서 시기(1875~1908) 이후 장저우파 목장들이 잘 사용하던 두공 작법이다.

4연좌산의 경성정

蓮座山敬聖亭 연좌산 관음사에서 오른쪽으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경성정은 처음 만들어진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관음사가 창건된 시기에 같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후에 일제시기인 1936년에 재건되었는데 이는 중리시 인해궁 옆에 위치한 성적정이 재건될 때와 비슷한 시기이다. 경성정과 성적정은 각각 하나는 중국식, 다른 하나는 서양식 모양을 하고 있어 서로 다른 기풍을 보여주고 있다. 경성정은 대체로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가운데가 비어있는 각기둥 형의 설계로 상, 중, 하의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들어진 것이며 높이는 5m이다. 지붕은 겹처마 헐산식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가장 위에는 ‘규성루’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 중국 고대에 문서와 시험의 운을 관장한 문창제군을 모시고 있고, 내부에는 학자의 수호신인 ‘괴성(魁星)’의 신상이 놓여 있다. 또한 경성정 본체에는 살아있는 듯 생생한 모습의 용과 호랑이의 석각이 있으며, 극락조와 연꽃도 조각되어 있다. 양쪽에는 ‘규원정사기, 성두사문광성두사문광’이라는 대련이 있다. 입구 위에 ‘경성정’이라는 세 자가 붙어있는 가운데 단의 화로는 주로 옛날 사람들이 문서 등의 종이를 태우는 데 사용한 것이다. 경성정 기대에는 팔괘 모양의 난간이 세워져 있다.

5함풍 시기에 만들어진 돌 사자

咸豐年間古獅 연좌산 관음사 입구의 돌계단에 위치한 함풍 시기(1851~1861)의 돌 사자는 소박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조각을 자랑한다. 이 돌 사자는 일제시대 재건 당시 현재의 위치로 옮겨져 참배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주의 사항

매년 음력 2월 19일 관음보살 탄신일 전에는 각지에서 온 참배객들과 하카 지역사회 단체들이 향을 올리고 조상을 뵙기 위해 연좌산 관음사에 모여 큰 성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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