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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임제호국선사

잘 보존된 타이완 유일의 남북조 양식 목조 사찰
타이베이 임제호국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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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소: 타이베이시중산구주취안가 5항 27호
경 위 도: 121.52097,25.07203
입장료:
개방기간:
연중 내내
개방시간: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주관 기관: 재단법인 타이베이 임제호국선사
주관 기관 홈페이지: 
E-mail: 
문의전화: (02)2594-8308

경관 가치

일제시대 타이베이시에는 원래 선도사, 동화선사, 임제호국선사(臨濟護國禪寺)라는 3곳의 일본식 대형 불교 ‘본당(대전)’이 있었다. 이 중 규모가 가장 웅장했던 선도사에는 1981년 큰 건물이 들어섰고, 동화선사의 대전 또한 1993년 시정부에 회수된 후 철거되어 종루만이 남았다. 유일하게 남은 임제호국선사(臨濟護國禪寺) 대전은 일본 가람(사찰 건축 용어) 양식과 송나라식의 사찰 구도를 계승하였으며 겹처마 팔작지붕을 가지고 있다. 타이베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본식 목조 사찰로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역사 연혁

타이베이 임제호국선사(臨濟護國禪寺)는 일본 불교 임제종 진남산호국사의 분원으로 1900년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1911년에 완공되었다. 그그 다음 해 안좌대전(安座大典)을 거행하며 타이완에서 유일하게 ‘호국’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사찰이다. 일제 통치부터 많은 일본 불교 종파가 타이완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당시 타이완 총독이었던 고다마 겐타로는 임제종을 가장 고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임제종을 호국 선사로 선택하고 일본 승려 이오리 겐슈가 주지를 맡도록 했다. 타이완 광복 후에는 중국 승려가 주지를 맡았다. 사찰은 지룽 강변에 위치해 있어 산과 물이 어우러진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사찰 내의 구산문, 대웅보전은 매우 잘 보존되어 있으며 2007년 수리를 거쳤다. 대웅보전의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위해 검은 기와와 반원통형 기와는 특별히 일본에서 주문 제작하였고 타이완 이란 치치란산의 노송나무를 사용하였다.

특색 가이드

타이베이 임제호국선사평면도에 【100대 명승지 명칭】각 항목이 표시되며, 안내 항목은 총 4개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대웅보전 구도

檜木建造的大雄寶殿外觀 임제호국선사는임제호국선사(臨濟護國禪寺)는 일본 에도시대의 전형적인 불교 건축을 보여주며, 현재 타이완에 있는 일제시대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하다. 타이완 노송나무를 사용하여 지어졌기 때문에 대웅보전에 가까이 가면 가득 풍겨오는 노송나무향을 맡을 수 있다. 대웅보전은 겹처마 팔작지붕(일본에서는 이리모야 방식이라고 부름)으로 건축되었다. 대전을 두르고 있는 대전 기대의 돌난간에는 부처의 비호와 극락왕생을 기원한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대웅보전의 가운데에는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으며 위편에는 ‘자비위회(慈悲為懷)’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상현수자상(現壽者相)’이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왼쪽에는 ‘지장왕보살’을 모시고 ‘계수병존(戒壽並尊)’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세 현판 모두 초기의 장엄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작자는 알 수 없다.

2구 종루 산문

鐘樓外觀 山門上覆蓋的黑瓦、筒瓦及鬼瓦 대웅보전 옆에 있는 구 종루 산문은 타이완에서는 보기 힘든 일본 에도시대 양식의 건축물이다. 산문은 팔작지붕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검은 기와와 원통형 기와, 귀면 기와 등으로 덮여 있다. 대웅보전의 원통형 기와에는 ‘진(鎮)’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악귀를 쫓아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종루의 원통형 기와에는 ‘이자삼성문(二字三星紋)’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타이완 총독인 고다마 겐타로 가문의 문장(일본에서는 ‘가몬’이라고 함)이다.

3무주생심 숫돌

寺前刻有「無住生心」的人造砥石 사찰 앞에는 ‘무주생심(<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에서 나옴)이 새겨진 숫돌이 있다. 이는 1918년 임제호국선사(臨濟護國禪寺) 확장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검증을 통해 선사시대 인류가 간석기를 만들 때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1935년 타이완 총독부는 이 숫돌과 원산 패총을 사적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원래의 숫돌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1953년부터 1954년 사이에는 이곳에서 타이완대학교 고고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원산문화’와 ‘승문도 문화’ 두 시기의 문화층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1975년 타이베이시 문헌위원회의 현장 탐사를 통해 산문 밖의 ‘무주생심’이 새겨진 거석이 당시에 발견했던 숫돌이었다는 점을 추리할 수 있었다. 숫돌 뒷면에는 ‘숫돌 연혁 기록’을 표시했다.

4이오리 겐슈의 묘와 석조불상

임제선사 뒷편에는 돌계단을 따라 관음석이 있다.  만령탑 앞의 광장에는 일본의 ‘사국팔십팔소석불(四國八十八所石佛)’이라고 하는 신상이 있다. 원래 이 석불에는 88존의 석불이 있었는데 현재에는 9존만 남아있다. 다른 한쪽에는 최초의 주지였던 이오리 겐슈의 묘가 있다.

주의 사항

임제호국선사(臨濟護國禪寺)는 지하철 위안산 역 옆에 있다. 평일의 사찰은 조용하고 관람객이 많지 않지만 음력 정월의 만불법회, 7월 지장법회, 11월의 미타법회가 있을 때는 많은 사람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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