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 가치
3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펑후 관음정(澎湖觀音亭)은 펑후섬에서 불교가 시작된 곳이자,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는 펑후의 가장 대표적인 사찰이다. 시위향을 조망할 수 있는 사찰 앞 풍경은 ‘서영승경(西瀛勝境)’이라고 불리는 펑후의 명승지이기도 하다.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훼손되었던 사찰은 일제시대인 1927년, 재건을 거치면서 천랑(穿廊, 곁채의 앞을 통해 정방의 양 바깥쪽을 따라 뒤 건물 쪽으로 통하는 복도)으로 회랑과 후용을 연결한 다중적 구조와 위편에 육각형 첨탑 모양의 겹처마식 지붕을 가진 종고루를 건설하여 독특한 사찰 양식을 가지고 있다. 사찰 앞에는 원래 청나라 펑후청(廳)의 통판아문(通判衙門) 앞을 지키고 있던 ‘찹쌀’ 사자상이 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타이완에서 매우 귀한 작품이다.
역사 연혁
펑후 관음정(澎湖觀音亭)은 또한 마궁 관음정이라고도 불린다. 명나라 말기에 이미 작은 사찰로 존재했으며 1696년, 펑후의 유격 장군이었던 설규(薛奎, 생몰년 미상)가 사찰을 확장하고 관세음보살을 모셨다고 한다. 방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던 옛 사찰은 1884년 청불전쟁 발발 당시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사찰 내의 유물과 관음상 2존, 십팔나한상 등도 모두 약탈당했다. 따라서 재건을 시작해 이듬해 완료하였으며, 1891년에 펑후 수사진의 총병(總兵)이었던 오굉락(吳宏洛, 1843년~1897년)이 자금을 기부하면서 다시 한번 재건을 거쳤다. 일제시대인 1923년, 일본 펑후 관서의 새 청사가 낙성되면서 원래의 펑후청 통판아문 앞을 지키고 있던 돌사자가 관음정으로 옮겨졌다. 1927년, 펑후 지역의 유세가들이 자금을 모아 재건을 실시하였으며, 후에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입어 1957년에 신도들의 자금 조달을 통해 수리되면서 소박하고도 중후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비록 과거의 화려하고 번화한 모습은 사라졌지만 사찰은 여전히 펑후 사람들이 부처를 뵙는 성지로 여겨지고 있다. 사찰은 1985년에 펑후현 지정 유적지로 등록되었다.
특색 가이드
15개간 크기의 양진(兩進) 건축물현재 관음정의 형태와 규모는 일제시대에 ‘강사(江司)’라고도 불렸던 마궁 허우쿠탄의 목공장인 셰장(謝江, 생몰년 미상)과 셰쯔난(謝自南, 1908년~1990년) 부자가 1927년에 건설한 것으로, 펑후시에 있는 사찰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사찰은 5개간 크기의 양진식 건축물이며 산문, 후용 2개, 뜰, 배정을 특징으로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양측과 연결된 마배형(馬背型) 용마루의 기복이 관음정 박공벽 앞면에 시각적인 효과를 준다. 물이 흐르는 곳과 익실(본채 좌우에 있는 방), 천랑, 뜰이 조합되어 있는데, 천랑이 회랑과 후용을 연결하고 있는 다중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위편에 육각형 첨탑 모양의 겹처마식 지붕을 가진 종고루를 건설한 것은 타이완 사찰 중에서 공간 절약 방법을 보여주는 진귀한 건축 방식이다. 사찰의 기대는 자갈과 벽돌을 쌓아 만들고 내부에 흙을 다져(붉은 흙, 모래, 석회를 혼합한 것을 틈새로 넣고 다진 것) 내구성을 더했다. 셰장 부자가 사용한 목조 형식은 기둥이 지붕의 횡목을 직접 지탱하게 하였으며 기둥 사이에는 들보가 기둥을 관통하여 놓여 있다. 또한 들보 위에는 촉주(蜀柱, 용마루를 지탱하는 가로 기둥으로 사용되는 짧은 기둥)나 들두(疊斗, 타이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목조 형식으로 여래 개의 두를 한곳에 쌓아 지붕 횡목의 중량을 지탱하는 방식)를 설계한 것이 특징이며 횡목 사이에는 다시 속목(束木)을 두어 보조하게 하였다. 이는 천두식(穿斗式)과 대량식(抬樑式)이 혼합된 건축 방식 중 하나이다.
2찹쌀 사자 조각상
관음정 외부에 있는 연두색의 사자 한 쌍은 보기에는 ‘돌사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찹쌀죽과 석회, 흑설탕 물을 조합하여 빚어 만든 것이다. 백 년이 지났어도 망가지지 않고 현재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사자는 원래 청나라 펑후청의 통판아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것이었는데, 일제시대인 1923년 일본정부가 펑후 신청사를 건설하면서 통판아문 앞을 지키고 있던 사자를 옮겨와 관음정을 지키게 하였다. 이러한 사자 조각상은 타이완섬과 펑후섬에 이 한 쌍만 있다.
3‘박해몽휴(薄海蒙庥)’, ‘대자비(大慈悲)’와 ‘자항보제(慈航普濟)’ 옛 현판
관음정은 전쟁으로 인해 여러 번 파손되어 초기의 원래 구조는 찾아볼 수 없지만 정전 위편에는 여전히 ‘박해몽휴(薄海蒙庥)’, ‘대자비(大慈悲)’, ‘자항보제(慈航普濟)’ 등의 옛 현판 3개가 보존되어 있다. 그중 ‘박해몽휴’는 청불전쟁(1884년) 이전부터 사찰 안에 있었던 가장 오래된 유물로 1840년에 펑후 수사협부장(펑후지역의 최고 군사 무장)으로 승진한 첨공현(詹功顯, 1765년~1854년)이 1841년에 푸젠 펑후 수군 등을 순찰하는 지방 총관병으로서 기증한 것이다. '대자비(大慈悲)’ 현판은 서통판사(署通判事) 정방기(程邦基, 생몰년 미상)가 기증한 것이며, ‘자항보제(慈航普渡)’ 현판은 1890년에 전회군(前淮軍) 남령(藍翎, 공로 있는 관리들의 관에 달았던 갈새 깃털) 진선보용(儘先補用) 칙령을 받은 류즈(劉志, 생몰년 미상)가 기증한 것이다.
4옛 종정(鐘亭)관음정 사찰 앞 광장 옆에는 옛 종정이 있다. 안에 있는 오래된 종은 1887년에 사찰을 재건하면서 설치한 것으로, 1980년에 펑후 제2 해군 조선장의 협조로 수리를 거쳐 이곳에 설치하였다. 2003년에 종정 본체 수리 후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5관음정 앞의 서영(西瀛) 무지개다리
관음정 앞에 높여진 서영 무지개다리는 2004년에 건설된 것이다. 타이완 전국 최초로 건설된 관광 보행자 전용 아치형 강철 다리로, 다리의 총 길이는 200m이다. 다리에는 빨, 주, 노, 초, 남, 보의 네온사인이 설치되어 있으며 매년 이곳에서 펑후 불꽃 축제가 열린다.
주의 사항
사찰은 연중 내내 개방하며 주요 법회로는 부처와 보살의 탄신일, 음력 7월의 우란분절이 있다. 사찰 밖의 서영 무지개다리는 펑후 불꽃 축제 때 불꽃을 발사하는 장소이며 불꽃 축제는 매년 4월에서 6월 사이에 열린다. 자세한 정보는 펑후현정부 여행처에 문의할 수 있다.
원형 연결
주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