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 가치
타이둥 천후궁(臺東天后宮)은 타이완 동부 지역에서 유일하게 천상성모(마조)를 모시는 관묘로, 건립 당시 개척이라는 심각한 도전 상황에 직면해 있던 옛 이민자들에게 굳건한 단결력을 제공해 주는 중요한 작용을 했다. 사당 내에는 청나라 광서 황제가 난을 평정한 후 하사한 현판과 마조전(媽祖田) 비석 등 옛 유물을 보존하고 있어 타이완 동부 개발 역사에서 막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천후궁은 일제시대의 황민화 정책하에서도 한족의 문화를 잘 보존해왔는데, 타이둥 원소절 마조 행차는 타이둥 천후궁(臺東天后宮)이 세워진 때부터 지금까지 1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형 기복 의식으로 타이둥시의 중요 축제이다.
역사 연혁
1875년, 청나라 조정이 타이완 동부지역에 베이난청을 세웠으며 1884년에는 제독인 장조연(張兆連, 생몰년 미상)이 진해후군을 이끌고 와 현재의 타이둥시 중화로에 군영을 설치했다. 1888년, 타이둥 지역의 원주민들이 각지의 논밭 측량비를 가혹하게 징수한 수미간무국(水尾墾撫局)의 위원들에 대해 불만을 품었고, 다좡(大庄)지역의 하카족 사람이었던 류첨왕(劉添旺, 생몰년 미상)이 인근의 이주민 및 핑푸족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다좡 사건’을 일으켜 타이둥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으로 민중들이 청사를 공격하여 300명도 되지 않았던 관군들이 17일 동안 청사를 지키다 후에 원군의 도움으로 포위망을 뚫을 수 있었다. 1889년에는 장조연 제독 등의 사람들이 마조의 도움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솔선하여 자신들의 녹봉을 바치고 사당을 지을 것을 제창하였다. 이듬해 봄, 사당 건립을 시작하고 타이난 사전대천후궁에서 마조를 분령해 왔으며, 1891년에 사당을 완공하면서 타이완 동부 지역의 유일한 관묘가 되었다. 천후궁은 원래 현재의 허핑가 동선사의 위치에 있었으나 일제시대인 1930년에 태풍과 지진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되었다. 이에 따라 지방 인사들이 현 사당 부지와 성금을 기부하며 다시 사당을 건립하였고 3년의 시간이 지난 1933년에 완공할 수 있었다. 사당은 후에 여러 번의 재건을 거쳤는데, 1981년에 패루와 강악대, 종루와 고루 등을 건설하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2003년에는 타이둥현 역사 문화 건축물로 지정되었다.
특색 가이드
1영소성우(靈昭誠佑)와 영조평만(靈助平蠻) 현판
천후궁 정전 위에 걸려있는 현판들은 각각 청나라 광서 황제가 하사한 ‘영소성우’ 현판과 장조연 제독의 ‘영조평만’ 현판이다. 그중 ‘영소성우’ 현판은 다좡 사건이 평정되고 천후궁이 건설될 때 장조연이 현판을 하사하여 줄 것을 조정에 주청하여 받은 것이라고 한다. 현판이 타이둥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타이둥에 항구가 없었기 때문에 배들이 모두 청궁 소항에 정박했는데, 청궁 소항에도 천후궁이 있었기 때문에 운반하는 사람이 실수로 소항 천후궁에 현판을 운송하게 되었고, 천후궁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현판이 도착하지 않자 다시 한번 현판을 내려 주실 것을 주청 드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영조평만’ 현판은 원래 장조연이 난을 평정하는 데 도움을 준 타이난 사전천후궁의 마조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기증한 것으로, 2010년에 양 사당의 교류 강화를 위해 완전히 똑같은 모양의 현판을 복제하여 증정한 것이다.
2마조전 비석
천후궁 사당 내에 있는 마조전 비석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마조전(田)은 장조연 제독이 천후궁이 건립된 후 사당이 수입원을 통해 계속해서 경영을 이어갈 수 있도록 츠상향 다포촌의 빈민구제용 토지를 마조전으로 떼어주어 소작료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마조전 석비는 또한 한족 사람들의 타이둥 개척 역사를 증명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3소충사(昭忠祠) 문무 장군
타이둥 천후궁(臺東天后宮) 오른쪽 호실의 소충사는 원래 피난청 바오쌍의 동쪽 해변에 위치해 있었다. 1881년, 피난청의 남로리번동지(南路理番同知)로 일하고 있던 원문탁(袁聞柝)이 타이완 동부지역 개발 중에 명을 달리한 선현과 열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위패를 모시고 있었으나 후에 무너지고 말았다. 따라서 1893년에 소충사에 있던 위패를 마조 사당 옆으로 옮겨서 모셨으며, 후에 다시 사당을 건설하였으나 일제시대의 황민화 정책으로 철거되었다. 이후 일제시대인 1933년에 타이둥 천후궁(臺東天后宮)이 현재의 주소로 이전해 오면서 새 사당에 함께 모시게 되었다. 사당 내에는 문무 장군을 모시고 있는데 문장군은 청나라 시대의 해방동지(海防同知)였던 원문탁(1822년~1884년)이며, 무장군은 다좡 사건 당시 폭도들에게 포위당했던 진해호군 제독 장조연이다. 두 사람은 모두 천후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도들에 의해 사당 내에 모셔지게 되었다.
4원소절 행차원소절에 열리는 타이둥현의 축제인 ‘원소 신 행차’는 원래 일제시대 때 환경과 위생상의 이유로 역병이 끊이지 않자 타이둥 천후궁(臺東天后宮)의 마조신, 해산사의 관세음보살, 복안궁의 복덕정신, 천관당의 백불은주공, 순천궁의 소부왕야가 함께 시내를 행차하여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지역 신도들에게 복을 내리기 위한 것에서 기원하였다. 후에는 점차 지역의 연례 종교 축제로 변화하여 매년 타이둥 천후궁(臺東天后宮)의 주최로 전통 신의 가마, 계동, 칠야와 팔야, 삼태자, 신장단, 팔가장, 십가장 외에도 오로재신, 송강진, 용진, 사진, 팔선예진, 고교진, 종규예진, 대고진 등의 진두와 예각 퍼레이드 카가 함께하는 70개가 넘는 행렬을 자랑하는 행차가 되었다.
주의 사항
타이둥 천후궁은 각종 민속 축제를 개최한다. 매년 음력 3월 23일 마조 탄신일, 원소 신 행차, 12년에 한 번 열리는 대형 기복 의식 등이 모두 사당의 중요 축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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