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 가치
타이난 사전대천후궁(臺南祀典大天后宮)은 타이완 최초로 조정에서 지은 사당이며 유일하게 조정의 사전(祀典, 당시 황제의 인가를 받았다는 뜻)에 이름을 올린 마조묘이다. 또한 명나라 말기 영정왕(寧靖王) 주술계(朱術桂, 1617년~1683년)의 왕부로 사용되었던 때의 건축 구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타이완에서 극히 드문 명나라 시대 관청 건물 중 하나이다. 옛날에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상징적 위치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배전은 타이완에서 가장 높고 큰 권붕식(捲棚式) 지붕을 가지고 있으며 건물의 석조, 목조, 채색화 및 소장하고 있는 역사 유물 모두 상당히 높은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또한 청나라 황제가 하사한 옛 현판을 포함해 100개 이상의 현판을 가지고 있어 타이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한다.
역사 연혁
타이난 사전대천후궁(臺南祀典大天后宮)은 타이완에서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조정의 사전에 등록된 마조묘이다. 타이난 지역에는 이미 1583년에 마조신을 모시는 천비묘가 있었다. 1663년 명나라 시대의 영정왕과 그 가족들이 타이완에 왔고 천비묘 뒷편에 지어진 영정왕부에 살게 되었다. 후에 천비묘를 확장하여 건물 앞쪽에는 마조신을 모시고 뒤쪽에는 관음대사를 모시기 시작했으며 이름을 동녕천비궁으로 바꿨다. 1684년에는 청나라 군대를 이끌고 타이완을 평정한 정해후(靖海侯) 시랑(施琅)의 주청으로 마조를 천후(天后)로 봉했으며, 이에 따라 동녕천비궁을 천후궁으로 개칭했다. 또한 춘추 제례에 이름을 올림에 따라 대천후궁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사당은 청나라 시대에 여러 차례의 수리와 재건을 거쳤다. 1818년에는 대화재가 발생하여 심한 피해를 보게 되었는데, 원래 모시고 있던 마조신상 또한 손상되어 무역상들이 베이강 조천궁에서 ‘삼교마(三郊媽)’를 모시고 왔으며, 이때부터 유명한 부성(府城) 베이강 마조 영접 의식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사당은 각 시대의 지방 건축 기술 유파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어 매우 높은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타이완 내정부는 1985년에 타이난 사전대천후궁(臺南祀典大天后宮)을 국가 지정 유적으로 등록하였다.
특색 가이드
1정해후 시랑의 돌비석
청나라 시대 수군 제독이었던 시랑(1621년~1696년)은 타이완을 수복한 후 ‘정해후’로 봉해졌다. 1685년에는 타이완 평정 과정과 민심 안정을 위한 조치, 뒤처리 등의 내용을 담은 ‘평대기략비기(平臺紀略碑記)’를 세웠다. 비석은 매우 정교하게 제작되어 있으며 타이완에서 가장 오래된 청나라 시대 비석이다. 비석은 대전 왼쪽에 위치해 있으며 매우 높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2사당 문의 72개 문정(門釘)
문정은 일반적인 사당의 문에는 사용하지 않으며 오직 황궁이나 황제 및 황후 급의 신을 모시는 사당에만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타이완의 일반적인 마조 사당은 문정이 아닌 수문신 채색화로 문이 장식되어 있다. 하지만 대천후궁에 있는 붉은색 대문은 72개의 문정으로 장식되어 있어 사전 관묘로서의 권위와 마조의 숭고한 신격을 나타내고 있다.
3이수(螭首) 석각
대천후궁 정전 기단 옆면에는 총 4개의 이수(‘이’는 용의 아홉 아들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으며 일반적으로 종정 그릇, 도장, 비석의 상부, 돌계단, 돌기둥 등에 조각되어 있음)가 조각되어 있다. 살짝 위를 향하고 있으며 당당한 기개를 나타내는 용머리는 중국의 전통 궁전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석조 구조물로 궁전의 위용을 상징한다. 이 장식은 타이완 전국 마조묘 중 유일한 것이다.
4명장의 채색화
대천후궁 내의 채색 벽화는 모두 일류 명장들의 작품이다. 삼천전에서 후전 양측까지 펼쳐져 있는 채색화는 모두 판리수이(潘麗水, 1914년~1995년)와 판웨슝(潘岳雄, 1943년~) 부자, 천위펑(陳玉峰, 1900년~1964년)과 천서우이(陳壽彝, 1934년~2012년) 부자, 딩칭스(丁清石, 생년 미상~2004년) 등 국보급 채색화 명장의 작품으로 모두 중국 전통 민간 전설, 신화 이야기, 서예 등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채색화는 일제시대부터 여섯 차례에 거쳐 제작, 재채색 및 수정이 이루어졌다.
1. 1943년 천위펑이 정전, 정전 전후의 회랑 입구, 성부모청 회랑 입구 용호벽 위에 작품을 그림.
2. 1956년 천위펑이 삼천전, 무랑, 배전에 12폭의 작품을 그림.
3. 1971년 성부모청을 수리하고 경의청을 편전 내의 삼보전으로 개축하면서 판리수이가 성부모청의 오른쪽에 ‘화목란’을, 삼보전 감실 양쪽에 합판 목판화를 그림.
4. 1976년 천서우리가 원래의 채색 방식을 모방하여 아버지인 천위펑이 대천후궁 배전과 정전에 그린 옛 작품을 다시 채색함.
5. 1980년 딩청스가 원작의 방식을 살려 천위펑의 1956년 작품을 수정함.
6. 1997년 판웨슝이 손상된 부분을 복원함.
5배전의 권붕식 지붕대천후궁은 전통 사당 건축 양식의 목조 구조를 계승하고 있다. 배전은 타이완에서 가장 높은 권붕식 지붕을 가지고 있다. 권붕은 중국의 옛 건축물의 지붕 모양 중 하나로 용마루가 없이 양측의 경사면이 교차하는 부분이 완만한 아치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아 전통 건축 역학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6옛 현판
‘사전’의 지위에 올라있는 대천후궁은 100개 이상의 옛 현판을 가지고 있다. 현재 걸려있는 청나라 시대 황제들의 현판 중 옹정황제가 하사한 ‘신소해표(神昭海表)’, 함풍 황제의 ‘덕모후재(德侔厚載)’, 광서 황제의 ‘여천동공(與天同功)’은 가장 진귀한 보물들이다.
7진전대마정전에 있는 높이가 5.45m의 대형 금면(金面) 마조 신상은 명나라 시대 신상의 조형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04년, 신상 내부의 목재 받침대가 부식되어 파손되기도 하였으나 신상을 수리하던 중 신상 내부에 들어있는 청나라 시대 석패 3개를 발견하게 되었다. 석패는 1822년에 신상을 수리하고 마조 신상의 얼굴을 금색으로 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향 연기로 인해 신상의 얼굴이 검게 그을리자 다시 복원 작업을 진행하였고 다시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다. 마조의 양옆에 있는 천리안과 순풍이 장군의 조각상은 마치 진짜와 같은 근육 선을 자랑하며 용맹스러움과 위엄을 가지고 있다. 이는 청나라 시대의 작품이다.
8부성 마조맞이 의식타이완에는 성황을 이루는 마조 행차 의식을 가리키는 ‘삼월풍마조(三月瘋媽祖)’라는 속담이 있다. 마조맞이 의식은 타이난 사전 대천후궁에서 기원한 것인데, 청나라 건륭제 때 사당의 업무를 맡았던 ‘삼교(三郊)’라는 집단이 마조 신앙의 분령을 통해 각지에 있는 무역상들의 연락과 단결을 기한 것에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청나라 시대의 마조 행차 의식에서는 윈린 베이강의 마조가 타이난까지 7박 8일 동안 행차하였는데 수십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행차에 함께 하였다. 일제시대인 1915년에는 타이난 현지의 ‘진남마’가 행차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937년에는 중일전쟁의 발발로 인해 의식이 잠시 진행되기도 했다. 1945년에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매년 거행되지 못했는데 현재까지도 4년에 한 번 음력 쥐띠 해, 용띠 해, 원숭이띠 해의 마조 탄신일 한 달 전에 2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매번 수십 곳의 사당이 행사에 참여하며, 백 개에 달하는 가마와 진두 행렬이 함께하는 타이완 최대 규모의 행차 의식이다.
주의 사항
매일 개방 시간은 오전 6시에서 밤 9시까지이며 연중무휴이다. 대천후궁에는 문물 전시실이 있으며 단체 관광객은 예약 후 관람이 가능하다. 음력 3월 23일 마조 탄신일 기간에는 마조 행차와 축하 행사 등으로 성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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