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 가치
8백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해인사는 진먼의 첫 번째 사찰이라고 불리는 진먼 지역 신앙 중심지 중 하나이다. 타이우산의 풍부한 역사, 문화, 자연, 군사적 특징 등의 요소가 사찰과 함께 어우러져 타이우산을 진먼의 중요한 정신적 상징이자 문화 경관 가치를 지닌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 또한 사찰의 재건 역사는 전쟁을 겪은 진먼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해산제일(海山第一)’ 석문관과 뒷산의 ‘고석실(古石室)’ 등 송명 시대의 건축물이 여전히 남아있는데 이들 모두 풍부한 역사, 문화, 예술적 가치를 보존하고 있어 해인사의 보물이라 할 수 있다.
역사 연혁
태무암사(太武巖寺)라고도 불리는 진먼 해인사(金門海印寺)는 타이우산 정상의 매화 농원 뒤편에 위치해 있으며 석문관을 산문으로 삼고 있다. 산의 암석 중에 마치 도장을 새긴 것처럼 생긴 암석이 있어 현지 사람들에게 ‘해인(海印)’이라고 불렸으며, 타이우산의 12경 중 하나가 되었다. 해인사는 송나라 함순(咸淳) 시대(1265년~1274년)에 건설되었다. 명나라 시대 노약등(盧若騰, 1598년~1664년)이 기록한 ‘태무사비기(太武寺碑記)’에 따르면 타이우산은 영험한 곳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당시 취안저우에서 널리 숭배받던 통원선옹(通遠仙翁, 송나라 초기의 사람으로 성씨는 알 수 없으나 백수공[白鬚公] 또는 요산왕[樂山王]이라고 불림)을 모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후에 신도들이 밤중에 관세음보살의 현신을 보게 되면서 관세음보살을 모시게 되었으며, 해인사는 도교 사당에서 불상을 모시는 사찰로 변화하게 되었다. 해인사는 명나라 때인 1580년, 1600년, 1661년 등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쳤다. 사찰은 1958년, 진먼 823 포격전 때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1960년 이후에 재건된 것이다. 1988년에 사찰 밖의 ‘해산제일’ 석문관이 진먼현 지정 유적으로 등록되었고 2009년에는 해인사의 대웅보전이 역사 건축물로 등록되었다.
특색 가이드
1‘해산제일(海山第一)’ 석문관
해인사 밖 왼쪽 앞에 있는 석문관은 진먼의 유명한 타이우산 12경 중 하나이다. 돌로 된 문미와 반 아치형의 돌기둥을 가지고 있는 높이 5m 이하의 작은 문이며 돌을 쌓아 만든 것이다. 석문관 위에는 명나라 말기의 유장(儒將, 선비의 풍모를 지닌 장수)이었던 노약등이 쓴 ‘해산제일’이라는 4글자 현판이 있다. ‘중건태무사비기(重建太武寺碑記)’에서는 ‘해상각도, 오주최저, 제도명산, 태무최저(海上各島, 浯洲最著, 諸島名山, 太武最著)’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바다 위 섬 중에서 진먼이 제일이고, 모든 섬의 명산 중에서 타이우산이 제일이다’라는 뜻이다. 원래 범위와 돌담의 규모가 현재보다 훨씬 컸던 석문관은 예전에 사찰의 방위 시설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현재는 사찰의 산문 역할을 하고 있다.
2고석실(古石室)해인사 대웅보전 뒷산에 있는 고석실은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거대한 암석의 동굴에 약간의 수리를 더하여 만든 것이다. 송명시대에 건축된 것으로 보이며 인공미와 자연미가 서로 어우러진 기묘한 형태와 구조를 가진 이 옛 건축물로 높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3안심석(安心石)
대웅보전 아랫부분에 위치한 안심석은 해인사가 건축되기 전부터 원래 사당 내에 있었던 거대 화강암석이다. 이 돌을 쓰다듬으면 무한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유리벽 위에는 복을 기원하는 방식이 적혀 있는데 왼손으로는 가슴을, 오른손으로는 돌을 쓰다듬으며 속으로 부처의 이름을 외면 바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4안심석실안심석의 측면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안심석실 안에는 사찰 재건 당시에 사용되었던 건축 재료, 명나라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화강암, 다양한 불교 서적과 그림 등 많은 해인사 관련 문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안심석실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연대를 추정할 수 없는 여러 개의 나한 조소상이다. 예전에 이 조소상들은 땅 밑에 묻혀 있었는데 사찰을 수리하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으나 이미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후에 전문가들의 복원을 거친 후 안심석실 안에 보존하였다. 각 신상은 모두 즐겁고 자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으며 얼굴, 팔다리의 선이 매우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고 옷과 장신구 또한 매우 정교하다.
5대웅보전
해인사 후전의 대웅보전은 1970년대에 재건된 것이다. 헐산식 지붕을 가지고 있지만 앞뒤 지붕면이 조금 짧아 겹처마 지붕과 같은 설계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위층의 지붕은 경산각름식(硬山擱檁式, 가로벽 사이가 비교적 짧은 지붕으로 가로벽 윗부분이 삼각형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도리를 삼각형 모양의 가로벽 윗부분에 바로 배치하는 공법, 건축 재료를 절약할 수 있음) 하중벽으로 받치고 있다. 아래층 처마에는 철근과 콘크리트, 전통 기초석이 사용되었다.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는 불전의 정면 너비는 3개간 크기이다. 건물 내에는 총 두 개의 후금(後金) 기둥만이 사용되었으며 문은 앞부분에 하나가 있는데, 이는 일반 사찰에서 보이는 대웅보전의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 또한 돌을 쌓아 만든 외벽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6종고루
정전 앞 좌우에 있는 종루와 고루는 종고루가 주 건물과 연결된 많은 사찰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68년에는 용루와 봉각이 증축되었다. 종루 안에 있는 옛 구리 종은 1898년에 일본선사(一本禪師)가 일본에서 자금을 모으고 주조하여 가지고 온 것이다.
7석상 공원석상 공원에는 해인사에서 모시고 있는 관세음보살 32기가 놓여있다. 불상은 불교 경전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에 기록되어 있는 부처가 중생과의 연에 따라 보여준 32개의 화신을 나타낸 것이다.
주의 사항
해인사는 매월 음력 17일에 소재기복(消災祈福) 법회를 연다.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산을 오르내리는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춘절 기간에는 신춘창두향(新春搶頭香), 평안의 종 울리기, 기복 카드 쓰기, 재앙을 없애 주는 광명등과 태세등 밝히기와 같은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며, 기간 중에는 사찰에서 식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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