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에 영광사를 재건할 당시 주민들의 생활이 매우 곤란하였으며, 교통이 불편함은 물론 건축 재료를 운반할 정도로 도로를 넓히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신도들은 현지에서 암석을 구한 뒤 옛날 집집마다 있던 석재 도구를 사용해 돌을 하나하나 다듬는 원시적인 수공법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는 석재의 결을 따라 쪼개 나가는 방식으로, 현지의 암석을 직접 필요한 크기로 절단한 후 쌓아 올려 사찰의 기초와 벽을 만들었다. 지금도 석재의 표면마다 당시 사람들이 다듬은 흔적이 남아있다. 사당 건물은 매우 견고하게 지어져 타이완 921 대지진 시에도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1999년에 타이완 921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진앙과 가까웠던 영광사 뒤편의 칸더우산 정상에서 매우 큰 암석이 떨어졌는데, 사찰 정전 뒤편에 있던 용안 나무와 바위들이 막아냄으로써 사찰 건물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는 않았다. 후에 이 암석 평면 위에 ‘불(佛)’자를 새기고 안내판을 설치하여 용광사의 풍경 중 하나로 삼았다.
용광사의 뒷쪽에는 난터우현 궈싱향 다스촌에서 가장 높은 산인 칸더우산이 있으며, 앞쪽으로는 멀리 펼쳐진 산과 들의 절경을 조망할 수 있다. 사찰은 해발 800m의 높은 산 속에 있기 때문에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 매우 상쾌하다. 또한 사찰로 드나드는 교통이 매우 불편하여 수행이나 참배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더욱 평온한 분위기를 풍긴다. 칸더우산 뒤에 있는 주펀얼산이 바로 유명한 타이완 921 대지진의 진앙지이다.